• 1955년 경남 김해 출신br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br
• 해양수산부 공무원(퇴임)br
• 저서 : 《평!(1~3)》, 《울릉도·독도 사수실록》, 《원사본기元史本紀》, 《원사열전元史列傳》
• 1955년 경남 김해 출신br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br • 해양수산부 공무원(퇴임)br • 저서 : 《평!(1~3)》, 《울릉도·독도 사수실록》, 《원사본기元史本紀》, 《원사열전元史列傳》
먼저 전쟁 주범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 살펴보자.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대해 조선 사람들은 ‘교활하고 사악한 전쟁 미치광이로서 잔인한 독재자’ 쯤으로 알고 있으나,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처세술(處世術)의 달인으로 보고 존경하고 있다. 이 자에 대한 평가가 두 나라 국민 간에 너무나 다르다.
물론 일본 사람들도 그의 조선침략에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오점이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나머지 그의 인생과 생존철학에 대해서는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란 어떤 사람이었으며, 무엇이 일본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았던 것인지,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1592년 4월의 동래성 싸움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히데요시는 1590년 11월 8일, 그러니까 전쟁이 일어나기 1년 5개월 전에 일본 쿄오토(京都)에서 조선측 대표를 접견하는데, 히데요시는 이 접견에서 조선측이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였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에 그는 부하들에게 조선을 칠 준비를 하도록 지시하였고, 20만 대군을 동원하여 1592년 1월 6일 드디어 조선을 공격하도록 명령하게 된다. 이리하여 일본군 제1군 1만8천 명이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하게 됨에 따라 조선과 일본은 바로 열전으로 돌입하게 되는데, 대마도 영주 소오 요시토시(宗義智)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에 그 교섭이 왜 결렬되었는지에 대해서부터 먼저 살펴보자.
제13부 황진의 진주성 싸움
제14부 정유재란과 일본군의 철수 제15부 전쟁 주역들의 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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