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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는 안서(岸曙). 오산중학을 거쳐 일본 경응의숙 문과를 중퇴하고 오산중학 및 평양 숭덕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다. 한편 '동아일보', '매일신보'기자 및 경성 중앙방송국 차장 등 언론계 활동을 하였다. 8.15후 출판사 수선사 주간을 역임하였으나, 6.25당시 납북되었다. 납북 후 1956년 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으로 임명되기도 하였으나, 1958년 철산지방의 협동농장으로 강제이주된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brbr
1914년 4월 학지광 창간호에 시「이별」, 「야반」, 「나의 적은 새야」, 산문시 「나의 가슴」, 「밤과 나」를 내놓고, 이어서 1918년 태서문예신보에 10여편의 창작시와 서구 상징시를 번역 소개하였다. 특히 프랑스 상징주의 시와 시론을 소개하고 최초의 번역시집인 『오뇌의 무도』를 상재함으로써 상징시풍을 1920년대 초기시단에 정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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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기탄잘리』,『신월』,『원정』등의 역시집을 통하여 한국시단에 타고르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1925년 이후에는 전통지향성으로 회귀하여 한시 번역에 치중하였고, 제자 김소월을 문단에 길러내어 그와 함께 1920년대 민요시 창작에 참여하였다. 한국적 정서와 가락을 살려낸 민요시 제작을 위하여 격조시라는 이름으로 장시 『지새는 밤』을 내놓기도 하였다. 1923년 최초의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를 발간한 것을 시작으로 『불의 노래』1925, 『안서시집』1929, 『안서시초』1941등 20여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한국 시단의 타고르 김억! 한국적 정서, 민요 율격에 바탕을 둔 시 창작을 통해 근대시와 민요를 접목시키고자 노력하였던 김억의 시집 '민요시집'
넝쿨넝쿨 딸기넝쿨
덤블덤블 딸기덤블,
송이송이 붉은송이 다닥다닥 붙은열매
어리얼럴 좋을시고 딸기딸기 명주딸기
님의門前 면주딸기 아하아하 좋을세라.
-'명주딸기 (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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