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확(安廓)(1886∼1946) 호 자산(自山)음악가, 국학자, 독립운동가마산 창신(昌信)학교 교사, 니혼대학 정치학 수학. 1916년 조선국권회복단 지부장, 3·1운동 마산 지역 만세운동 주도.1928년 이왕직(李王職) 아악부(雅樂部) 촉탁 근무.1921년 잡지 ‘아성(我聲)’, ‘신천지’ 편집인저서 『조선문명사』, 『조선무사영웅전(朝鮮武士英雄傳)』, 『조선문법』, 『조선문명사』 등
*안확(安廓)(1886∼1946) 호 자산(自山)음악가, 국학자, 독립운동가마산 창신(昌信)학교 교사, 니혼대학 정치학 수학. 1916년 조선국권회복단 지부장, 3·1운동 마산 지역 만세운동 주도.1928년 이왕직(李王職) 아악부(雅樂部) 촉탁 근무.1921년 잡지 ‘아성(我聲)’, ‘신천지’ 편집인저서 『조선문명사』, 『조선무사영웅전(朝鮮武士英雄傳)』, 『조선문법』, 『조선문명사』 등
어떤 민족 어떤 국가를 막론하고 무사도가 없는 데는 없다. 조선이 옛 문화의 나라였던 만큼 고대 조선에 있어 무사도가 있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거가 되는 바이다. 삼한시대로부터 내려온 그의 발달과 사회도덕성의 자취를 여러 문헌으로서 이를 고찰해 본다면 그 시대의 정치가나 학자들은 무사도의 정신을 윤리상의 일대 천직으로 각오하여 왔다.
《무정보감(武定寶鑑)》 서문에는 이러하다. 王者之政文武面己二者兼用而無所偏廢然後治道盛矣 又曰文模武烈炳輝靑史皆可以爲萬歲君國者之龜鑑 (왕의 정치와 문무는 두 가지를 겸하여 사용하되, 어느 한쪽도 폐지함이 없게 한 다음에 도리를 성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말하기를 문모(文模)의 무열(武烈)이 빛나는 광채는 모두 군주 나라의 귀감이 되리라) 《고려사(高麗史)》 병고(兵考)에는 이러하다.
서문
제1장 무사도와 유래 제2장 무사의 발전 제3장 무사의 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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